2025년 4월 월례모임(직장인반-부산지부)
하느님을 뵈오려면…
“영혼이 빛을 받아야 하느님을 뵈올 수 있다” (64.9.30.강론)
■ 시작 말씀: 루카 24.14-35 엠마오로 가는 제자
16. 눈이 가려져서
31.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
어둠에 눈이 가려져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. 그 어둠을 뚫을 수 있는 것은 빛, 빛을 받으려면 하느님께서 선사하는 은총의 빛과 인간 쪽에서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.
● 강론 1960.5.8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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■ 무아 방유룡 안드레아 사제의 빛의 영성
무아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님의 영성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‘빛’이다. 방신부님은 빛을 하느님을 뵈옵는 중요한 방법이며 통로라고 언급한다.
● 강론 65.7.26 참조.
방신부님은 하느님을 뵈옴에 있어 은총으로서의 빛과 하느님을 뵈옴의 관계를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. 방신부님의 빛의 영성은 무엇보다도 “하느님은 빛이다”라는 인식으로부터 시작하여 물질의 창조에서부터 예수님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빛과 더불어 빛 안에서 활동하신다(58.12.4 강론 외 다수).
● 물질의 창조: 혼돈, 곧 어둠 속에서 빛이 생겨라 부르심
● 예수의 부활: 세상으로부터 어둠(죽음)을 몰아내는 빛(생명)을 부르심
빛은 창조로부터 출발해서 정점으로서의 예수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역사 안 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완전히 드러낸다. “빛은 생명”(59. 5.23.; 59.7.7. 강론)
■ 영적 창조는 어떻게 일어나는가?
하느님의 빛은 영적 창조 여정 중에 있는 이를 완성으로 인도하는 빛이다(“성화 사업에 있어서도 빛으로 시작해서 이 빛으로써 하느님을 보게 된다. 59.5.19 강론)
● 물질 창조: 창조주 하느님의 주도권 아래 그분의 선성으로부터 나옴
● 영적 창조: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을 먼저 당신과의 일치로 부르시고, 인간이 그 거룩한 초대에 응답하는 데서 영적 창조가 발생.
인간이 기꺼운 동의로서 그분의 구원-성화적 활동에 협력할 때 창조의 본래 목표로 서의 영혼(인간)의 성화는 ‘싹트고 꽃 피고 열매 맺게’ 됨(59.1.18 강론)
● 인간(영혼)의 성화: 하느님의 초월적 은총과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
자유 안에서의 인간의 협력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느님께로 자신 을 개방하는 행위(Cfr.G. IAMMARRONE, L’uomo immagine di Dio, Roma 1989, p.34.)
‘지금’이라는 시점은 그가 하느님께로 자신을 열어젖히는 무대이고, 그가 세상과 타
인을 향해서 보이는 태도는 그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수단(Cfr.F. MONTAGNINI, Adaom, dove sei? Linee di antropologia biblica, Brescia 974, p.27).
■ 하느님의 은총인 빛과 인간의 협력
● 인간은 영혼의 빛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께 협력한다.
● 인간은 하느님을 향해 개방성과 폐쇄성을 가질 수 있음
폐쇄성은 아담이 ‘자유의 남용’으로 인해 하느님을 향해 문을 닫고 스스로 멀어지는 상태
● 하느님의 충실성과 개방성 덕분에 인간은 빛을 받을 수 있음
■ 하느님의 빛을 받기 위해 사욕을 정화하는 ‘침묵(沈默)’
● 하느님의 빛을 받는데 장애물: 분심 잡념, 사욕, 나쁜 생각 그리고 나쁜 마음
● 사욕이 제거되어야만 빛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게’(59.2.14 강론)됨
● 순수한 인간을 오염시킨 사욕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‘침묵(沈默)’을 제시.
● 영혼의 빛을 얻기 위한 인간의 협조를 그리스도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십자가. 십자가는 아담의 불순명이 초래한 인간의 비참함이 존재론적 운명을 부수고 인간을 창조 때의 하느님과의 개방적인 관계에로 복원시키고자 하는 예수 의 자유로운 순명
● 인간 협조, 그 내용은 십자가 신비에의 참여
협조하는 인간은 “십자가에 달려야 하고 무덤에 들어가야 함.
예수처럼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죄 짓는 내가, 분심잡념 갖는 내가, 사욕 부 리는 내가 없어진다(죽는다)는 의미. 이것은 ‘신비적 죽음’(59.5.17)
● 협조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이 신비적 죽음을 마다하지 않음.
● 협조는 영적 여정에 있어서의 십자가의 신비, 인간이 영적부활을 얻기 위한 전제
●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과 십자가 신비로의 참여로서 죽음을 불사하는 인간의 협조 안에서 영혼의 빛이 빛난다(59.12.31 강론)
■ 침묵의 절정 ‘대월(大越)’
● 신비적 죽음을 맞기 위해서 침묵이 필요, 침묵은 곧 협조
● 침묵의 절정은 바로 ‘대월(大越)’
영혼은 신비적 죽음 속에서 새로운 국면으로서의 영적 체험을 하게 됨.
하느님을 뵈옵는 것과도 같은 신비가 발생.
침묵의 절정에서는 영혼이 지닌 존재론적 구조로서의 비참함조차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음. 침묵의 절정에서 인간은 세상 한가운데서도 오직 하느님만을 인식할 뿐이고 ‘모든 것을 하느님을 위해서만’ 행하게 되며 ‘우리 주 예수와 같이 다만 하 느님의 뜻대로만 행하게 됨(59.1.22).
● 원죄 이전에 첫 아담이 천국 속에서 지녔던 하느님과의 대면적 관계가 영적 여정 을 하고 있는 인간에게로 회복
● 침묵의 절정에서는 죽음조차도 영혼에게 더 이상 고통을 주지 못함.
‘고통보다 더 강한 위로의 빛이 내려와 괴로움을 녹여 버리기’ 때문(61.2.26 강 론: 61.6.9 강론 참조)
● 침묵의 절정인 대월에서 영혼은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하고 깊게 체험하게 됨
■ 예수의 십자가는 침묵과 그의 절정인 대월을 가르치는 학교
●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께서 하신 침묵은 영적 여정에 올라선 이들에게도 요청되는 침묵, 이때의 침묵은 정화.
●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우러러보며 아버지와 마지막 통교를 이루시는 예 수께서는 침묵의 정상에서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빛의 한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우러르는 기도자의 모습으로서 대월.
● 십자가의 죽음을 겪고 있는 중에서도 예수께서는 영적 여정에 있는 영혼(인간)에게 극기와 신비적 기도를 가르치는 스승. ”극기 중에 제일가는 극기는 침묵이요, 기도 중에 제일 가는 길은 대월이다”. 64.9.29 강론)